자유민주공화국 정부의 원리와 실제, 그리고 개혁을 위한 지침
“과연 난폭한 운전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스스로 통제 장치를 만들어 장착할 것인가? ... 한국 민주주의의 재시동과 재출발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된 정치가들도 분명 존재한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시민의 참여와 선택이 이들에게 힘을 주고 대한민국을 밝은 길로 안내하리라 믿는다.” - 352쪽
이 책은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와 정치의 제도가 무슨 원리를 바탕으로 마련되었으며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대주제로 제기한다. 그리고, 세부 주제로써 10개의 장을 구성하고 있다. 국가, 정치, 정부, 민주주의와 같은 기본 개념의 규정으로부터 시작하여 민주정치의 발달사, 정당의 역사와 기능 및 체제, 선거제도의 유형과 특징, 의회의 구조와 기능, 국가 관료제의 형성과 특징, 중앙과 지방정부 간의 관계, 헌정주의와 사법심사, 선거제도 개혁과 헌법 개정 등을 논의한다. 목차를 이루는 여러 장 간의, 그리고 각 장에 포함된 절 간의 긴밀한 연관성으로 보아 책의 짜임새가 돋보인다.
저자는 정부와 정치제도의 원리와 작동에 관한 기본 개념과 핵심 명제를 적확하게 제시하여 독자가 숲과 나무의 두 차원을 모두 파악하도록 한다. 방법론적 입장에서는, 제도가 행태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라고 보고 있다. 독자가 정치제도의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상적, 규범적 논거와 함께 경험적 연구에서 얻어진 지식을 토대로 서술하고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비교의 관점에서 주요 국가의 과거와 현재 사례를 풍부하게 소개하고, 그것을 준거로 한국의 현실을 분석한다.
이 책에서는 행정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다. 저자는 정부를 광의로 정의하고 정부와 정치 현상을 논한다. 즉 “행정부와 입법부에 더해 사법부, 지방정부 등 헌법기관들, 그리고 경찰·군·국세청 등 집행을 담당하는 공공기관까지 정부”(29쪽)라며 미국의 연방헌법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광의로 규정된다. 통치는 정부가 하는 일을 의미하는데, 동서고금을 통해 통치는 그보다 넓은 범위의 개념인 정치의 핵심에 있다. 통치와 정치는 좁은 의미의 ‘정부’인 행정부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온전히 파악될 수 없다.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이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점하지 못하는 정국이 여러 번 발생해왔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일컫는 여소야대 상황은 일반적인 학술용어로 분점정부라고 표현해야 한다. 분점정부나 단점정부 개념은 광의로 정의되는 정부에 부합한다. 한국의 현행 헌법과 통상적인 용례에서 ‘정부’ 개념은 주로 협의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국가의 통치에 있어서 그 나름대로 일익을 담당하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제도와 기능에 대한 몰이해를 조장한다. 이에 본 집필자는 헌법 개정 시에 협의로 규정된 ‘정부’는 행정부로 고쳐 표현해야 함을 주창한다.
책의 저자는 한국 정부와 정치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무절제한 권력투쟁의 늪에 빠진 “정치가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274쪽)라는 언명에 공감한다. 정책 역량을 갖춘 정당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 캠프를 중심으로 일회성 선거용 정책대안(공약)이 급조”되고, “진영 논리에 따라 (...) 섣부른 공약들이 국정과제가 된다. 이를 정책으로 만들고 실천하라고 관료들에게 ‘윽박지른다.’”(273쪽) 여야 정당과 정치세력 간의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의 미덕은” 찾기 어렵고,(341쪽) “사법부의 정치화도”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한 원인”(325쪽)이 된다.
또한 저자는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그 개혁의 방향을 사회 공론장에 제시하고 있다. “우리 민주공화국에 자유민주주의의 호흡을 불어넣어야”(219쪽)함을 역설하면서, 정치인과 정당의 행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선거제도의 개혁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어 정부형태를 개편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몇 가지 개혁 대안의 목표와 초래될 수 있는 문제점이 논의된다.(특히 10장) 저자는 양당제를 지양하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제 강화, 대통령 선거에서는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안한다.
이 책은 내용의 중요성과 가독성에 비추어 광범한 독자층이 읽어야 할 역작이다. 한국의 앞날을 고민하는 지식인은 물론 중앙과 지방에서 활약하는 정치인과 공직자에게 소중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주권자인 시민들의 덕성과 행동이 필요한”(352쪽) 현시점에서, 일반 시민에게도 필독서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궁극적으로 시민들이 정부와 정치의 현실을 현명하게 판단하고 개혁에 동참하는 능력이 향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