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의 양에서 질로 논의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그 방향을 제시하다
" ‘좋은’ 일자리는 기여적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고, 사회는 이런 일자리를 제공할 책임이 있으며, 시민은 그런 일자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 - 103쪽
이 책은 고용과 실업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측면들을 다양한 사례와 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특히, 단순한 일자리의 유무에 대한 논의를 넘어 일자리의 ‘질’이 왜 중요한지를 소개하면서, 기술의 진보, 돌봄 노동, 이주와 같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일자리의 ‘질’은 왜 고려해야 할까? 저자는 이를 ‘외부효과’에 기인하여 설명한다. ‘외부효과’란 나의 행동으로 인해 제삼자가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효과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일자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당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 공동체, 나아가 사회 전반에 긍정적 외부효과를 끼친다. 따라서 ‘좋은’ 일자리를 단순히 시장 논리에만 맡겨서는 노동시장에서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좋은’ 일자리란 무엇을 의미할까? 이를 명확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사회 개개인이 중요시하는 가치가 모두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임금’과 ‘노동시간’은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이들 두 가지 요소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를 다룬다. 우선 ‘임금’은 이론적으로는 경쟁시장 하에서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을 반영하여 결정되지만, 저자가 설명하듯 현실의 고용계약은 노동의 내용이 정확히 명시되지 않는 등 임금 결정에 다양한 불확실성이 개입될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노동자의 생산성을 임금이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거나, 전체 소득 중 노동 소득의 비중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음을 지적한다.
적정 수준의 임금을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한 최저임금과 노동조합의 다양한 긍정적 역할 등을 소개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전통적으로 실업을 유발하고, 근로장려세제(EITC) *와 같은 방식이 저소득층 지원에 있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하지만 실업 유발은 실증연구에서 일관되게 확인되는 바가 아니며, 기업의 독점적 수요, 효율성 임금 논리 하에서 긍정적 효과가 존재할 수 있다고 밝힌다. 노동조합 또한 과도한 임금 인상으로 경영 안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기업과 노동자의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노동자의 임금 교섭력을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소개한다.
‘좋은’ 일자리를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로는 ‘노동시간’을 들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은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로, 이는 산업재해 발생 위험의 증가, 가정 및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저해 등 다양한 문제점을 생산한다. 저자는 그동안 노동시간이 생산성 향상이나 경제성장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감소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차원의 꾸준한 노력을 통해 비선형적으로 감소해 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점은 현재 노동시간 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한국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해 나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가 직면한 과제들은 점점 더 복잡할 뿐만 아니라,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일자리의 가치는 기업과 개인의 입장, 그리고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상이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일자리의 양과 질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실무자 간의 꾸준한 논의와 협력적 정책 형성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필요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에, 우리 사회의 일자리, 고용과 실업, 임금과 관련된 문제에 관심 있는 이라면 꼭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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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란, 근로소득이 있고 일정 조건에 해당하는 가구에 대해 현금 급여(근로장려금)를 지급함으로써 저소득 근로빈곤층의 세금 부담을 경감시킴과 동시에 근로활동을 장려하고 소득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