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으로 쪼개지는 세계 : 제2차 냉전 시대 경제, 기술, 에너지, 안보의 대분열
“제2차 냉전은 단 하나의 갈등이 아니다. 이는 경제와 에너지, 기술, 공급망 그리고 군사전략 전반에 펼쳐지는 역동적이고 다차원적인 투쟁이다.” - 175쪽
이 책의 저자인 제이슨 솅커는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로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정세 전망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예측 전문 기관인 프레스티지 이코노믹스(Prestige Economics)와 퓨처리스트 인스티튜트(The Futurist Institute)의 회장인 저자는 책에서 현재의 국제정세를 ‘제2차 냉전’으로 규정한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을 축으로 세계가 강대국 중심의 배타적인 영향권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2차 냉전이 공식적으로 2022년 2월 4일 시작되었다고 못 박고 있다. 지정학적 긴장과 강대국 간 경쟁 하에 중국과 러시아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만나 소위 “제한 없는 우정”을 토대로 전략적 협력을 공고히 한 시점이다. 그로부터 3주가 채 되기 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는 금융시장과 원자재 공급망, 제조업을 비롯한 세계 경제 모든 부문에서 충격을 일으켰다.
저자는 현재를 미국과 중국의 ‘제2차 냉전’으로 규정하면서 제1차 냉전 역시 미국과 소련의 경쟁이었지만 중국이 이미 핵심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변수였다고 본다. 1970년대 닉슨 행정부의 데탕트에서 진정으로 수혜를 본 국가는 중국이었다는 설명이다. 이후 탈냉전기 동안 중국은 경제발전을 지속했고 결국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이 되었다.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의 동맹 체제가 한 축을 이루고,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이 다른 한 축을 이루면서 경제적 분절화가 심화되는 것이 현재의 국제정치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략적 연합이 형성되고 경제와 기술의 탈동조화가 일어나며, 에너지 전쟁과 하이-브리드 전쟁, 그리고 신기술에 기반한 사이버·정보전이 가속화된다고 본다. 또한 유럽과 중동의 갈등이 심화되는 한편,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숨 막히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경제 안보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기술적 위협과 심리적 위험, 소셜미디어를 둘러싼 전쟁의 전선이 새롭게 형성되어 간다는 점을 흥미롭게 지적하고 있다.
제2부는 냉전 2기에 적대적인 진영의 경쟁이 정치·외교·군사뿐 아니라 기술·에너지·금융·공급망 등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경제 안보는 경제력과 자급자족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미국은 여전히 잠재성장률을 유지하고 천연가스 등 에너지에서 우위를 점하지만, 꾸준히 증가해 온 국가부채와 재정건전성, 핵심 광물의 공급망 및 에너지 안보 부문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회복지 비용이 증가하면서 국가부채가 쌓이는 것을 막지 못하면 미국의 재정 건전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이 증가하게 되는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독점 자원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며, 무역 항로와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제3부는 향후 10년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제2차 냉전에서 승리하는 방안을 탐색한다. 제2차 냉전의 미래는 네 가지 시나리오로 제시되는데, 냉전의 정체와 붕괴, 협력적 미래, 끝나지 않는 제2차 냉전의 지속, 그리고 갈등이 심각한 군사 충돌로 발전하는 파국적 미래로 나뉜다. 저자는 이 중 냉전이 지속되거나 갈등이 확산되는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책의 말미에는 냉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국가 전략뿐 아니라, 위험 속에서도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이윤을 확대하는 기업 전략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전략적 기업은 경제적·지정학적·기술적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점차 파편화되는 세계에서 공급망과 사이버 보안, 금융 위험 노출, 그리고 전략적 포지셔닝 전반을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복잡한 다중 위기의 현재를 단순한 구도와 추세로 알기 쉽게 설명하는 큰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과 중국이 여전히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하며 초국가적 위협 앞에서 협력의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복합적 현실을 충분하게 고려하지는 않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을 간단히 언급하기는 하지만, 미국의 보호주의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이 동맹국과 일으키는 갈등에 대해서도 심각한 고려를 하고 있지는 않다. ‘제2차 냉전’이라는 수사가 현실을 단순히 설명함에 있어서는 유용하지만,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또 다른 미래의 노력을 약화시킬 우려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