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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기계발서 형식을 빌린 이데올로기 비판
서평자
강지연
발행사항
469 호(2019-04-30)
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목차

  • 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 법칙 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 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 법칙 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
  • 법칙 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
  • 법칙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 법칙 7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 법칙 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 법칙 9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 법칙 10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라
  • 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 법칙 12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

    서평자

    강지연 (북 칼럼니스트)

    서평

    자기계발서 형식을 빌린 이데올로기 비판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흔한 자기계발서가 하나 더 나왔구나 싶었다. 목차를 훑어보면 이런 의심은 더 짙어진다. ‘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법칙 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을 만나라’ 등등. 이런 얘긴 나라도 하겠다 싶다. 
    자기계발서에는 고유의 문법이 있다. 마치 캐논 변주곡처럼 비슷한 주제가 소재만 달리하여 반복되기 때문에 서점에 서서 제목 읽고, 목차 읽고, 책장 휘리릭 넘겨 가면 선 자리에서 독파하는 게 가능하다. 그런데 이 책은 책상에 앉아서 정독하지 않으면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자기계발서의 문법을 차용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문학과 사 회과학을 아우르는 전천후 교양서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자 조던 피터슨은 하버드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토론토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통파 심리학자이다. 그런 만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각종 연구결과를 토대로 기존 상식을 논박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저자의 펜 끝은 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 그리고 신마르크스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를 향한다. 
    첫 장인 ‘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와 달리 자세 교정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서열 구조가 생명체의 ‘생존과 적응에 필수적’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한가로이 바닷가를 노니는 듯 보이는 바닷가재마저도 사실은 치열한 지위와 영역의 다툼이 일상화돼 있다. 바닷가재도 인간만큼이나 안락한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안전한 보금자리는 적고 그런 곳을 원하는 바닷가재는 많다. 그 결과가 치열한 영역다툼이다. 바닷가재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동물들도 지위와 영역에 집착한다. 노르웨이의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토를레이프 셀데루프 에베 (Thorleif Schjelderup-Ebbe)에 따르면 농장에서 어슬렁거리는 흔한 닭들의 세계에도 ‘모이 쪼아 먹는 순서’가 있다. 
    “서열구조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영속적인 특성에 가깝다. 서열의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서열구조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야 하는 이유는 서열구조로 인한 지위와 영역다툼이라는 자연이 부여한 존재의 짐을 인정하고 그 짐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의미다. 
    첫 장은 이 책의 핵심이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오해는 저자가 ‘권력의 효용’을 옹호하고, 지배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피터슨은 최근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위계질서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권력이 아니라 자신감을 옹호한다. 성공에 이르는 최상의 방법은 의미있는 것을 책임성 있게 추구하는 것뿐이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스타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 역시 『불안(이 책의 원제는 status anxiey, 즉 지위 불안이다)』에서 서열 구조에 따른 지위 불안을 다뤘다. 조던 피터슨과 드 보통의 결론은 하늘과 땅만큼 판이하다. 드 보통은 ‘지위 불안’은 근대 사회가 만든 개념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맘 편히 살라는 극히 마음편한 결론을 제시한다. 
    이처럼 현대사상의 주류가 된 상식에 도전하기 위해 저자는 성서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솔제니친까지 폭넓게 인용하고 거침없이 해석한다. 그 대담한 필치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페미니즘(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좌파주의의 영향을 받은)의 광범위한 영향력에 대해 우려한다. 얼핏 보면 육아에 대한 내용으로 오해하기 쉬운 챕터 ‘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는 남성성에 대한 옹호다. “현대 세계에서는 남자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가 더 반항적이고, 긍정적으로 말하면 더 독립적이다. 남자아이는 경쟁을 좋아하고 순종을 싫어한다.” 
    저자 조던 피터슨은 여성학과 젠더 연구의 핵심 철학이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인문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데 대해 우려를 표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거의 모든 학문이 남성 에게 적대적이다… 나는 대학생들, 특히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자칭 지구를 지킨다는 사람들에게 철학적으로 공격받아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특히 젊은 남자에게 가해지는 충격은 더 크다.”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역사는 인종적, 민족적, 성적으로 다른 집단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 간의 전쟁이다. 이를 가부장적 폭압과 지배로 바꿔 말하는 건 일종의 ‘지적 범죄’라는 것이 조던 피터슨의 주장이다. 피터슨은 ‘문화는 남성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류의 창조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지적한다. 인류 역사에서 남성과 여성은 가난과 궁핍의 공포에서 해방되기 위해 힘을 합해 싸워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집필될 당시 발행된 <이코노미스트> 표지 기사는 ‘더 약한 성(The weaker Sex)’이였다. 더 약한 성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 요즘 대학 3분의 2 이상 학과에서 여학생이 절반을 넘는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이어지면 15년 이내 대부분 학과에서 남자를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남자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소식이지만 여성에게도 좋은 소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강해지면 더 강한 배우자를 원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여성은 소년이 아닌 남자를 원한다. 그래서 강하고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성은 짝을 찾기가 어렵다. 2002년에 발표된 어느 연구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소득과 교육, 자신감과 지능, 지배력과 사회적 지위에서 자신보다 더 높은 남자”라는 생각이들 만큼 자신을 압도하는 남성이 주변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페미니즘 부류의 ‘정체적 정치’ 근본에 내재한 신좌 파주의의 문제점을 함께 지적한다. 그들은 원한과 시기심을 연민과 정의로 위장했을 뿐임을 알리기 위해 ‘진짜 좌파’ 조지 오웰을 소환한다. “오웰은 말쑥하게 차려입고 안락의자에 앉아 철학을 논하며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민과 부당한 사회에 대한 경멸을 이야기하는 사회 개혁자들이 번지르르한 말과는 달리 가난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부자들이 싫었을 뿐이다.”  
    피터슨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욕에 불타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신좌파의 위선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그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먼저 자신부터 그가 말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법칙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자신을 변화시키길 원하는 사람을 위한 챕터이다. 사실은 이 책 전체가 그러하다. 책 제목이 『12가지 인생의 법칙』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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