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처럼 생긴 식용 물질 : 초가공식품의 모든 것
“대부분의 초가공식품은 사실 음식이 아니에요. 그냥 산업적으로 생산된 식용 물질(edible substances)에 불과해요.” - 234쪽
우리는 왜 피곤할수록 자극적인 음식이 먹고 싶고, 한번 먹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울까? 이 책은 이런 현상을 ‘초가공식품’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본다. 브라질의 영양연구자 카를루스 몬테이루가 제안한 NOVA 식품분류체계*에서 초가공식품은 산업 공정으로 만들어지며 원재료의 형태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식품을 의미한다. 탄산음료, 과자, 시리얼 등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서는 초가공식품의 특징인 물성(매우 부드러움), 이와 연결되는 체내 소화와 흡수 속도(매우 빠름), 초기호성(너무 맛이 있음), 영양 조성(맛이 있으려면 대부분은 달거나, 짜거나, 둘 다거나, 적당한 지방이 있어야 함)이 복합적으로 중독성을 일으킨다는 다양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또한 이러한 초가공식품의 과도한 섭취가 신선한 재료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식사 섭취를 줄어들게 하고, 이는 비만과 같은 질병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그뿐 아니라 초가공식품의 다양한 식품첨가물이 대장의 미생물균총을 바꾸고 장 누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로 탄산음료에 들어가는 인공감미료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 많은 역학 논문에서 초가공식품의 과다한 섭취가 다양한 심혈관계질환, 당뇨, 장 질환과 같은 육체 건강뿐 아니라 우울증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장과 뇌는 바로 연결이 되어있어서 장의 환경이 기분과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매우 많다.)
저자인 크리스 반 툴레켄은 영국의 의사이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건강 관련 방송인으로 자신이 초가공식품을 4주간 먹어보는 임상시험을 진행하며, 관련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서적과 연구논문을 탐독하여 이 책 한 권을 만들어냈다. 주목할 점은 초가공식품 애호가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선택이 유전과 환경의 결과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체중과 비만은 개인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다이어트 서적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건강을 넘어 사회적 건강 불평등 문제와 기후 위기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장한다. 환경과 식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17장 중 ‘기후 위기에 도움이 되는 식품이 있는가?’(375쪽) 부분을 살펴보는 것도 매우 유익하고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정부의 규제였다. 초가공식품에 경고 라벨 붙이기, 어린이 대상 마케팅 금지, 세금 부과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주장이지만 식품에 라벨을 하나 붙이기 위해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며, 담배에 세금을 부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를 생각하면 저자의 해법이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열망이 크지만 번번이 실패한다면, 그리고 음식에 대한 집착이 있다면 반드시 저자와 같은 임상실험을 하면서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초가공식품이라는 용어가 낯선 독자들은 정크푸드라는 단어로 대치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오래되고 뻔한 이야기이지만 새로운 주인공 이름을 붙여 리메이크한 신상품이라 생각해도 괜찮을 것이다. 신선한 이름으로 포장을 하여 사회에 의제를 던질 수 있다면, 그리고 조금이나마 시민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한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면 이 책은 의무를 다한 것이다. 식품 관련 정책입안자 및 전문가가 일독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잡식동물의 딜레마』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폴란이 제시한 건강한 식사 가이드가 생각났다. “당신의 증조할머니가 본다면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식품을 먹지 말자.” 바로 식품처럼 생긴 식용 물질(Food-like edible substances), 초가공식품이다.
* 식품을 가공의 정도와 목적에 따라 4개의 그룹(자연식품 및 최소가공식품, 가공식재료, 가공식품, 초가공식품)으로 분류하는 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