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본 적 없다면 불가능? 그래도 해야 하는 ‘다르파 웨이’
“뭔가 새로운 일을 할 작정이라면, 비판을 무시해야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저항합니다. 그들은 생각해요, ‘내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불가능할 거야’라고 말이죠. 사람들은 언제나 당신을 의심하기 마련이죠. 그럼에도 뭔가 하려고 하면 어쨌든 끈질겨야 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 512쪽
DARPA(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는 ‘정신 나간 구상’이라는 손가락질과 ‘불가능’이라는 의심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는 존재다. 창설 초기부터 줄곧 논란에 휩싸였지만, 그들이 만든 미래가 현실이 된 사례가 너무도 많다. 군사적 필요라는 특수성이 때로는 거센 비판을 불렀지만, 미래 전장의 판도를 선점하려면 연구 시점을 적기에 맞추는 게 아니라 앞당겨야 한다는 그들의 태도는 한결같다. ‘불가능하다’라는 회의가 제기될 틈을 허락하지 않은 채, DARPA는 과감한 개척과 혁신을 실천해 왔다.
이 책은 DARPA의 역사와 성과는 물론, 실패 사례까지 망라해 DARPA가 어떻게 오늘날의 권위와 영향력을 쌓아왔는지를 보여준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벌어진 첨단무기 경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돌아보면, DARPA(당시 ARPA)의 출발이 얼마나 절박하고도 혁신적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캐슬 브라보 실험’ *과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는 미국에 기술적 우위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각인시켰고, 그 결과 1958년 DARPA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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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 브라보(Castle Bravo) 실험은 1954년 마샬제도 비키니섬에서 실시된 미국 최초의 건식수소폭탄 실험 작전인 캐슬 작전(Operation Castle)의 첫 번째 실험임. 이때의 폭발은 미국 핵실험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보였으며 결국 미국이 일으킨 최악의 방사능 참사를 초래함.
**스푸트니크(Sputnik)는 1957년 소련이 발사한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으로, 당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줌. 이후 미국은 과학기술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더불어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 돌입하고, 결국 인류 최초의 유인 달 탐사 계획인 아폴로 계획을 성공시킴.
냉전이라는 ‘장기·전략적’ 구도 속에서 DARPA는 핵·우주 같은 거대 무기체계를 연구하던 집단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사정이 달라지게 된다. 단기·전술적 차원의 기술이 요구되는 열전 상황에서, DARPA는 정글 지역 감시·탐지 기술을 비롯해 RAND 연구소·제이슨 그룹 등과 함께 과학으로 전쟁 양상을 뒤바꾸려 애썼다. 하지만 전쟁은 정치·사회·외교가 얽힌 종합판이었다. 기술적 우위만으로는 결과를 뒤집지 못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DARPA는 베트남 전에서 얻었다.
그러나 이런 실패가 곧바로 미래로 이어지는 발판이 된 것 또한 DARPA의 특징이다. 전장 환경을 기술로 제어한다는 목표가 무인화·자동화 기술로 뻗어나갔고, 병사들의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는 과감한 연구도 시작됐다. 누군가는 ‘공상과학’이라 비웃었지만, DARPA는 미지의 영역에 뛰어드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후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전개되면서, DARPA가 축적해 온 감시·정찰·네트워크 기술은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과학기술에 인간적·사회적 관점을 접목해 ‘투명한 전장’을 만들겠다는 시도는 단순히 적을 무력화하는 것을 넘어 전쟁 자체를 조기에 종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보인다.
물론 DARPA가 추구하는 인간의 신체 능력 강화나 실시간 데이터 통합 같은 연구에 윤리적·도덕적 쟁점이 뒤따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DARPA가 그리는 미래가 결국 현실이 된다’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그들이 개발한 무인화 기술은 민간 드론 산업을 촉발했고, 로봇·빅데이터 연구는 AI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DARPA가 상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때, 그 무모함이 곧 산업 지형을 바꾸는 힘으로 작동한 것이다. 저자는 특히 신체·뇌 연구가 전장을 ‘정신·인지 영역’으로 확장시킬 것이라 전망하며, 다음에 등장할 DARPA의 기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한다.
이 책이 출간된 후에도 DARPA는 여전히 ‘미래를 끊임없이 앞당기는’ 태도로 신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2025년 3월 기준, 국방 과학·정보 혁신·마이크로시스템·전술 기술 등의 분야에서 총 267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이 책(원서)이 2015년에 출간된 탓에, 이후 전개된 DARPA의 활약상이나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DARPA의 최신 사업 현황이 궁금하다면, 먼저 『DARPA AGENCY FINANCIAL REPORT FY 2024』를 살펴보길 권한다. 또한, DARPA가 점화한 미래 전장 기술이 최근 군사혁신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논문『모자이크전의 발전과 우리 군에 주는 함의』(배진석, 2023)도 일독해보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불가능에 과감하게 도전해 온 덕분에 2025년 이후 DARPA가 어떤 변곡점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결국 ‘DARPA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믿음 속에서, 이 혁신 집단의 다음 발걸음을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