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친 것은 보는 힘이다 : 일상을 예술로 바꾸는 시선의 기술
“안경을 쓰면 더 잘 볼 수 있긴 하지만 훌륭한 예술가는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다!” - 413쪽
영국의 미술평론가 윌 곰퍼츠(Will Gompertz)가 그의 저서『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에서 “안경을 쓰면 더 잘 볼 수 있긴 하지만 훌륭한 예술가는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돕는다.”라고 남긴 이 문장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시각적 빈곤’의 문제를 정확히 꿰뚫는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미지를 접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가. 저자는 현대인이 익숙함이라는 타성에 젖어 눈앞의 실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심리적 맹목 상태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소셜미디어(SNS)를 비롯한 디지털 매체가 쏟아내는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보는 힘은 약해지고 감각은 무뎌졌다. 이제 ‘무엇을’ 볼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볼 것인가를 묻는 일은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이 책은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의 고유한 시선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윌 곰퍼츠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아트 에디터를 거쳐 테이트(Tate) 미술관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어렵게 느껴지는 현대미술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는 방면에 탁월한 역량을 보여온 저술가이기도 하다.『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은 미술을 감상의 대상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세계를 읽는 관찰 도구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뜻깊다. 저자는 작가 톰 하비(Tom Harvey)* 가 조각가였던 아버지와 어린 시절 해변에서 찍은 사진을 비롯해 그가 이메일로 보내온 글을 계기로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다. 사진 속 하비의 아버지는 해변에 떠밀려온 사소한 사물들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곰퍼츠는 그 장면에서 보통의 사람이라면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 풍경을 특별한 아름다움과 의미로 재발견하는 예술가만의 ‘보는 힘’에 주목하게 된다. 누구나 볼 수는 있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이다. 예술가의 시선은 바로 그 힘이 어떻게 길러지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미술이 세상을 보다 깊이 있게 바라보게 하는 ‘보기’의 방식을 훈련하는 교재가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31명의 예술가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예컨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인간의 눈이 고정된 카메라 렌즈와 달리 끊임없이 움직이고 뇌가 여러 정보를 종합해 하나의 장면을 구성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에게 자연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 속에서 새롭게 경험되는 살아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호크니의 그림 속 보라색 나무는 사실의 왜곡이 아니라 관찰자가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파동 속에서 체험한 자연의 진실에 가깝다.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구름 연구〉는 관찰이 보편적 통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는 기상학자와 같은 엄밀함으로 구름의 형태와 이동, 대기의 변화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곰퍼츠는 컨스터블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하늘이 사실은 쉬지 않고 변하는 거대한 천상의 전시회였음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렘브란트(Rembrandt)의〈63세의 자화상〉은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한다. 이 작품은 그가 부와 명성을 잃은 뒤 생의 마지막 해에 남긴 자화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곰퍼츠는 이 작품을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말 그대로 결점까지도 묘사한 한 예술가의 평생에 걸친 실험의 결과물”이라 평하고, 렘브란트에 대해 “위대한 네덜란드 거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더 잘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라고 평한다.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은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정보 과잉 시대에 스스로 보는 힘을 기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특히 공공의 영역에서 ‘판단’과 ‘해석’이 중요한 이들이라면 유익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미술은 설명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사유를 확장하는 경험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위대한 예술가들은 우리 주변의 세계를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더 복잡하고 더 흥미로운 것으로 여기고 더 깊이 보게 만든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보고 분별하는 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공공사회가 요구하는 ‘보는 힘’과 ‘관찰의 기술’을 일깨우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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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하비(Tom Harvey):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수상 경력이 있는 작가이자 콘텐츠 제작자로, 영화·방송·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창작산업 발전 공로로 MBE(대영제국 훈장)를 수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