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몸을 얻을 때, 인간은 무엇을 되찾는가
“상상력이 방향을 제시한다면, 그 길을 현실로 이어주는 것은 결국 ‘기술’이라는 영역이다” - 253쪽
AI에게 저녁 메뉴를 물으면 근사한 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이 AI는 냉장고 문을 열지도, 컵 하나를 집어 들지도 못한다. 우리가 경험한 AI는 화면 안에 갇힌 지능이었다.『로봇의 미래』는 이 지능이 화면 밖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즉 ‘피지컬 AI’의 시대를 다룬다. 저자 공경철 카이스트 교수는 웨어러블 로봇 연구자이자 엔젤로보틱스를 창업한 기업가로, 학계와 산업 현장을 두루 경험한 전문가다. 그래서 이 책은 장밋빛 로봇 담론과도, 막연한 공포론과도 결이 다르다.
저자가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왜 로봇이 반드시 필요한가’다. 그의 답은 로봇이 디지털 세상과 물리적 세상을 잇는 유일한 가교라는 데 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면, 지능은 화면 안에서만 맴돈다. 로봇은 그 결론을 실제 세계의 움직임으로 번역하는 장치, 곧 AI 시대의 마지막 한 걸음이다. 여기에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이 겹치면서 로봇은 선택지가 아니라 사회를 지탱할 기반 시설이 된다. 저자가 로봇을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전략 기술’로 규정하는 까닭이다. 반도체와 배터리가 그러했듯, 로봇 제조 역량을 갖춘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격차는 머지않아 국력의 격차로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로봇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수식 대신 ‘피드백’이라는 개념으로 답한다. 센서로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목표한 상태에 맞게 움직임을 판단한 뒤, 다시 그 결과를 확인하는 순환이다. 이 고리 위에 AI가 얹히면서 로봇은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던 기계에서 낯선 환경을 읽는 존재로 바뀐다. 로봇의 정의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실용주의적 미국은 챗봇 같은 자동화 시스템까지 로봇으로 품고,〈철완 아톰〉을 보고 자란 일본은 로봇을 가족 같은 동반자로 여긴다. 한국은〈아이언맨〉에 가깝다.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덧입혀져 능력을 키우는 로봇이다. 이 차이는 취향이 아니라 각국 로봇 산업의 진로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이 대목에서 책은 공학서의 외피를 벗는다. ‘로봇’이라는 단어는 1920년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태어났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로봇 공학 3원칙’을 세울 때도 실물 로봇은 없었다. 물건보다 이야기가 먼저였고, 그것이 훗날 공학자들의 연구 주제가 됐다.〈에반게리온〉의 동기화,〈빅 히어로〉의 베이맥스,〈아이언맨〉의 수트가 그러했다. 상상력이 먼저 좌표를 찍으면 기술이 뒤따라 길을 낸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로봇을 쇳덩이로만 여겨 온 독자에게는 뜻밖의 발견이다.
그러나 저자는 상상에 머물지 말라고 못 박는다. 이제는 환상이 아니라 ‘제품으로서의 로봇’을 마주할 때라는 것이다. 판타지 속 로봇은 무엇이든 해내지만, 제품으로 만들어진 로봇은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고장 없이 작동하며, 결국 시장에서 팔려야 한다. 일론 머스크가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로 던진 승부수의 본질도 화려한 성능이 아니라 대량 생산이 가능한 가격에 있다. 책의 후반부가 감속기·모터·센서 같은 부품에서 제어 소프트웨어, 로봇을 빌려 쓰는 RaaS(Robot as a Service)까지 밸류체인을 훑고 미중 패권 경쟁을 짚는 이유다. 저자는 한국 로봇 산업의 활로로 독자적인 통합 플랫폼 구축과 ‘M.AX 얼라이언스’*같은 연합 전략, K-컬처의 영향력을 활용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제안한다.
마지막 장에서 책은 인간을 향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AI 로봇은 도구를 넘어 인간의 진정한 파트너가 되어 간다.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 저자의 답은 단호하다. 로봇의 목적지는 인간을 밀어내는 자리가 아니라, 인간이 위험하고 단조로운 노동에서 벗어나 더 인간다운 일에 몰두하게 돕는 자리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혼자 일어서고, 노인이 자기 집에서 존엄하게 나이 드는 것이다. 로봇이 삶에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생산성이 아니라 자립이다. 물론 전환기의 마찰은 실재하고, 그 충격을 흡수할 재교육과 안전망은 사회의 몫이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로봇의 미래는 언젠가 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그것을 막연히 두려워했거나 낙관해 온 독자에게, 이 책은 그 ‘막연함’을 걷어내 주는 가장 친절한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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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얼라이언스 : 2030년까지 제조 AX(AI 전환) 분야에서 100조 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제조 AX 선도 국가로의 도약을 목표로 출범한 산업통상자원부 주도의 민관 협력체로, 정부, 제조기업, AI 개발사, 연구기관 등 11개 전문 분야에 걸쳐 1,500여 개 기업·기관이 참여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