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BTS의 성공을 다른 프레임으로 분석하다
“화장하는 남자 아이돌은 기존의 지배적인 남성성을 뒤흔드는 동시에, 변화하는 성, 인종 정체성의 맥락에서 보다 포괄적이고(inclusive) 덜 배타적인 젠더·인종 정체성 표현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p. 253~254)
BTS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른다. BTS가 의미 있는 성공을 기록할 때마다 그들이 왜 성공했는지 분석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노랫말에 대해, 뮤직비디오에 대해, 팬들과의 소통에 대해, 공연과 온라인 마케팅 방식에 대해 무수한 분석이 이어졌다. 그만큼 전 세계에서 성공한 한국 뮤지션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싸이도 있고, 블랙핑크도 있으며, 몬스터엑스도 있다. 하지만 지금 BTS만큼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세계를 휘어잡는 한국 뮤지션은 BTS뿐이다. BTS는 현재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월드스타이다.
홍석경 교수의 책 『BTS 길 위에서』는 BTS의 인기에 대한 홍석경 교수의 답변이다. 홍석경 교수는 ‘BTS는 어떻게 케이팝을 넘어 세계인을 움직였을까?’를 묻는다. 그리고 ‘문화적, 산업적, 사회적, 미디어적 관점의 전방위 분석’을 제시한다. 비교적 이른 2015년부터 BTS에 관심을 갖고 분석한 홍석경 교수는 BTS가 케이팝을 넘어섰으며, 그 원인을 BTS의 트랜스미디어라고 결론 내린다. 그는 세대론과 계급론으로 BTS의 인기를 설명한다.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BTS의 팬클럽, 아미의 목소리도 옮긴다. 뿐만 아니라 BTS의 인종과 성정체성이라는 프레임까지 제시함으로써 월드스타 BTS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론을 보여준다.
아마도 책을 읽는 이들의 관심사에 따라 새롭거나 흥미롭게 읽는 부분은 다를 것이다.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트랜스미디어, 트랜스픽션의 틀로 BTS를 설명한 부분이다. 음악이 소리의 집합체로만 소비되지 않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BTS가 어떻게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고 연결했는지 설명한 부분은 BTS를 오랫동안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해온 연구자의 안목이 빛난다. 더 이상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가 분리되지 않는 시대, 자신의 모든 것을 콘텐츠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를 선도하는 뮤지션으로서 BTS의 전략은 돋보인다. BTS는 자신을 노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수한 콘텐츠로 자신의 진심과 생활을 보여주어 교감하고 성장하는 방식으로 팬들과 일체화되면서 감동을 선사하고 인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또한 BTS가 청년 세대의 상실과 분노를 대변하고, 저항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의미 있다. 하지만 홍석경 교수는 BTS를 조직하고 제작하며 마케팅하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에서 왜 그 같은 태도를 선택하고 승인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단순히 BTS의 멤버들이 그 같은 서사를 선택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BTS가 처음부터 대안적인 세계관을 담지한 작품을 내놓지는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자본주의 콘텐츠 상품 시장에서 BTS의 멤버들이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작품이 나온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분히 나이브하다. BTS는 인디 뮤지션처럼 자신이 원하는 생각을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발표하는 보헤미안 같은 예술가가 아니다. 지금은 모든 예술가가 아니 모든 사람이 자신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BTS가 택한 태도의 동인(動因)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냉정하고 다각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BTS가 보여주는 새로운 인종적 상상력이나 대안적 남성성을 분석한 장은 다른 프레임과 문제의식으로 BTS를 사유하게 하는 서술로서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보석 같은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이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인종과 젠더에 대한 편견과 싸워야 하는 히어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와 같은 서술은 BTS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기대가 과하게 투영된 부분으로 보인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경쟁 속에서 분투하는 개인의 성장통을 다년간의 앨범과 스토리에 담았고, 수행과도 같은 그 길의 끝에서 스스로를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개인의 성장통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스스로를 받아들이라는 메시지야말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이어가는 오늘의 가장 중요한 동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더 튼실해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홍석경 교수의 책이 BTS를 이해하는 다른 프레임과 BTS가 지향해도 좋을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홍석경 교수가 찾아낸 BTS의 긍정적이고 대안적인 가능성이 계속 피어나 BTS가 자신들의 길 위에서 어제와 다른 이야기를 계속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길은 끝나지 않고, BTS는 오늘도 걷고 있으니까.